꽤 오랫만이라고 느껴지지만
생각해보면 겨우 2달도 안돼 낙원에 또 다녀왔다.
시답잖은 구정연휴의 약발인지, 시아버지께서 토요일 오후부터 자유를 주신 덕분에 말이다.
낙원을 찾을 때면 늘상 기분이 들뜬다.
버스를 타고가며 가구거리⇒고속버스터미널⇒한강⇒이태원⇒명동⇒종로로 이어지는 세상구경 할 수 있어 좋고~
정거장에 내려 상가까지 인사동길을 지나게 되어 운치있는 눈요기거리 많고~
드디어 상가에 들어서면 계단식 사운드에 오염됐던 내 고막을 각종 파형식 사운드가 정화해 주시고~
상가를 나올 때면 예기치 않았던 환율에 카드값을 걱정하며, 내 심장도 뛰긴 뛰는구나 다시금 확인하며 놀라워 하고~
...
오늘은
570일 가까이 병원 한 번 제대로 데려다 주지 못한 미안함에
종합검진을 맡겨주고 왔다만, 대신 내 지갑이 몸져 누운듯 하다.
역시 인생은 제로섬.
남아프리카에서 왔다고 반갑게 자신을 소개했던 알아들을 수 없는 이름을 가진 녀석
어느 클럽에서 테너 섹소폰을 분단다..
트럼펫을 15년간 불다가 코리안 드림으로 한국에 왔다는데, 누군가가 저 큰 테너섹소폰을 던져주더란다.
사람들은 그를 보면서 진한 재즈의 분위기를 느끼고 간다지만
그는 달갑지 않아 보였다.
하드케이스를 통째로 떨어뜨려 악기수리를 맡기러 왔다던데,,
집어던지지 않고서는 그런 덴트가 생길리 없는 게 분명하다.
수리비 견적이 생각보다 많이 나왔는지 한 동안 고민을 한다.
결국 어쩔 수 없는 듯 잘 고쳐만 달라고 부탁을 한다.
그러고선 다시 샵에 있는 트럼펫을 만지작 거린다.
섹소폰은 버튼이 많아 배우기가 쉽지않다고 말하는 그의 앞에서
표정관리가 되지 않는다.
내겐 슬퍼보이는 사연이지만 그는 밝은 표정을 잃지 않는다.
동시대에 태어난 그는 나와 다른 차원에서 살고 있는 듯 하다.
부디 빨리 본업으로 전업하기를..
한국생활이 늘 행복하기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 내가 믿는 것을 그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한다.
언젠가 뉴스에서 지금의 낙원상가가 없어진다고 들은 듯하다.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의 모습이 곧 없어진단다.
종류 별로 칸칸이 나뉘어 붙어있는 수많은 매장들.
내한하는 세계적인 뮤지션들도 꼭 한 번 씩은 들려 악기 컨디션을 보고가는 곳.
이런 저런 상담에 친절하게 각 분야별 전문 매장을 서로 추천해주는 곳.
누군가 흔치않은 악기를 들고오면 여기저기서 몰려와 구경하고, 한마디 씩 거드는 곳.
단골가게 사장님께 5천원짜리 커피를 사다주면서 물건값 3천원 깎는 재미가 있는 곳.
...
이런 사람냄새 그대로 지켜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