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4차원에 살고 있다."
아인슈타인이 환기시켜 준 소중한 깨달음들 중 하나다.
특히 시간 축은 3차원 공간과 달리 불가항력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즉, 아무런 움직임 없이 한 자리에 머물렀다 할지라도,
우리는 시간이라는 축에서 늘 일-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진행되는 의식의 변화는 가끔 놀랄 만큼 현재의 나를 과거의 나와 분리시키기도 한다.
요즘
꿈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실제로 대답해야 할 상황도 예전보다 잦아진 것 같고,
나에 대한 서류를 작성 할 때에도 유행처럼 꼭 꿈을 기입하라는 란을 마주하게 된다.
'현실의 내 모습'과 '꿈을 이룬 내 모습' 사이에 '시간'이 개입된다는 점에서
꿈 혹은 목표를 세우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 번째 방법.
'현재의 내가 원하는 미래의 내 모습을 목표로 설정하는 것'
이 방법은 현재까지의 경험을 통한 나의 욕망을 단순히 미래에 투영시킨다.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나처럼 욕망할 것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으므로
최악의 경우에는
설정된 꿈을 이루기 위해 시간을 보내지만
그 꿈을 미래의 내가 더 이상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두 번째 방법.
'미래의 내가 원할 것 같은 미래의 내 목표를 설정하는 것'
이 방법은 현재의 욕망이 아닌 미래의 내 욕망을 먼저 예상하고 그것을 충족시킬 수 있는 목표를 탐색한다.
이렇게 설정된 목표가 현재 내가 욕망하는 것과 다를 수도 있다.
이 점에서 낭만적이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의 내 욕망은 과거에 예측되어서 이미 충족시켰어야 하는 것이고,
예측된 미래의 욕망 역시 결국은 내 욕망 아니냐는 합리화가 가능하다.
미래학 또는 예측관련 서적에서
이 두 접근방법에 대한 소개는 자주 언급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효용성에 대한 결론도 이미 내려져 있는 듯하다.
딱 잘라
첫 번째 방법은 틀렸고,
두 번째 방법이 맞단다.
단순히 말해
미래의 환경변화를 통한 내 인식에 대한 예측을 그나마 한 번 시도해보는 것이
미래의 내 인식이 현재의 그것과 같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보다는 낫다는 이야기다.
또한
두 번째 방법은
개인의 성취 차원을 넘어
누군가가 그것을 이뤄내며 입증했던 실현가능성, 그리고 그가 제시했던 매뉴얼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예측된 즉 아직 펼쳐지지는 않았지만 그럴듯한 미래의 사회 환경을 전제로 하는
새로운 자기계발방식을 유도한다는 차원에서
역사적 진보에 기여할 수 있다고도 말한다.
성공한 사람들은 다들 좋은 기회가 우연히 찾아왔고,
시기를 잘 만나 그 자리에 올라갈 수 있었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과연 그들이 기회와 시기를 노리지도 않고
그토록 열심히 준비했을까?
5년 후를 내다봤을 때
나의 꿈은 무엇인가?
단순히 지금 부러운 삶을 살고있는 누군가처럼 되고 싶은가?
5년 후의 나는
어떠한 환경에 처해있을 것이며,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인가?
거기에서는 어떠한 기회가 찾아올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나의 꿈은?